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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이 왕성하여 참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 공동체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19-01-06 오전 10:26:05
조회 1674

말씀이 왕성하여 참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 공동체

2차대전 때에 독일의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순교한 신학자 본회퍼는 자신의 옥중 원고인 『나를 따르라 (Nachfolge) - 제자의 길』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진정한 출발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이렇듯 따름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우리는 한국 교회의 현 시점에서 좀 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 예수를 따라다니는 자들이 제자인가?”
예수님 당시 보면, 제자들뿐만 아니라 무리들 또한 따름의 걸음을 같이 한 것(적어도 당분간)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무리의 따름에는 그들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이 무리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 요한복음 6장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대단히 긴 내용을 차지하는 6장에서 사도 요한은 무리의 속성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때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큰 명절 중 하나였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할 많은 무리들이 디베랴 바닷가를 떠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긴 여정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향해 오는 것을 보시고 이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기적을 베풀어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선지자가 바로 자신들이 찾던 메시아라고 확신하고는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했습니다.(요 6:15)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청을 뿌리치시고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고 다음 날은 당신이 즐겨 가셨던 가버나움으로 갔으나 거기에까지 이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이들의 따름을 보시고 예수께서 일갈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표적, 즉 하나님 나라(하나님 통치)의 표징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르니 앞으로도 그 의식주를 기대하여 당신을 따르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들의 깊은 속을 꿰뚫어보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a)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이후에 더욱 배부를 것을 기대하며 따르는 자들이 무리입니다. 여기서의 떡은 오늘날로는 의식주, 명예, 권세, 인기 등 종교가 줄 수 있는 또 다른 혜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제자는 아직 남아있는 죄성에서 오는 실패, 좌절, 시험을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예수 자신(Jesus Himself)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무리는 예수를 따르는 어떤 전제와 자기 아젠다(agenda)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채워지는 한에서만 따름의 동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결국 예수를 떠나갑니다.

즉, 제자의 길과 무리의 걸음을 구별하는 기준은 따르는 것 자체가 아니라 ‘따름의 내용성’ 혹은 ‘따름의 신앙고백’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무엇을 보고 지금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의 응답에 따라 제자의 정체성과 무리의 정체성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제자의 길과 무리의 길을 이해하는데 현대 교회가 성서적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며, 교회를 바르게 개혁해 나감에 있어 소중한 통찰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 교회 안에는 예수님 시대처럼 무리와 제자가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행동주의 철학에 깊이 세뇌를 받은 현대인들의 특성상, 자기 헌신의 동기가 점검되지 않은 신자들은 헌신 자체로 무리의 길과 제자의 길을 구분 지으려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제자도의 핵심은 ‘헌신성 여부’가 아닙니다. ‘헌신의 동기’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바로 그것을 나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길 위에 서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이 물음에 정직하게 답을 하는 많은 성도는 자신이 제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제자의 가면을 쓴 무리의 삶을 살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정기간 당혹감과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로 인해 이 성도는 ‘살았으나 죽은 자’가 아니라 ‘죽었기에 살아난 자’가 될 것입니다. 알고 보면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무리로부터 출발해 서서히 제자의 길에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한편, 자신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제자의 동기를 갖고 주님을 섬기고 있음을 알아차린 성도들은 자기를 그 자리로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그런 삶을 선택할 태생적 능력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이 모든 것이 은혜로 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리에서 제자로 변화(transformation)하여 그 삶의 풍요로움과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차고 넘치는 공동체! 그것이 2019년 새성전에 들어가는 하나님 백성공동체 새문안교회의 비전이요 소망입니다. 2018년이 ‘영혼’의 존재와 깨어남에 관심 갖는 해였다면, 이제 2019년은 그렇게 깨어난 성도의 삶의 방향성을 ‘제자도’와 그것의 ‘기쁨’에서 찾는 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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