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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훈련의 신학 (1) - 죄와 구원의 은유 -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19-02-03 오전 10:20:20
조회 1100

훈련의 신학(1) - 죄와 구원의 은유 -

“사람은 잘 변화되지 않아. 바뀔 것을 너무 기대하면 안돼. 그냥 끌어 안고 함께 가는 거야.” 예부터 교회생활을 오래 한 분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다. 만일 이 말이 정설 아닌 정설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이는 기독교 복음이 사람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교회의 목양에서 목회자 자신이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디에선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우리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명료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예수 그리스도는 양이 생명을 얻고, 그것을 풍성히 누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인간을 위한 대속적 죽음 자체에 고정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 자체는 십자가를 향한 길인 동시에, 만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헌신과 수고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좇아가며 그 분의 삶을 육화하는 교회가 된다는 측면에서, ‘변화(transformation)’와 관련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일까? 혹은, 어떤 부분에서 교리적으로 정교한 정리가 필요한 것일까? 현대교회에서 왜 교회는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해야 하며, 그 목적과 방향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필자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좀 더 정교화된 에큐메니칼적 죄론과 구원론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본다. 새문안 칼럼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이에 대해 독자들과 살펴보려고 한다.


기독교 인간학은 인간을 죄인으로 통칭한다. 하지만, 죄인 혹은 죄인을 구성하는 내용으로서의 ‘죄’라는 단어는 그렇게 쉽게 규정할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죄라는 단어 자체는 ‘하마르티아[hamartia]’라는 헬라어에서 연유하며, “표적에서 벗어나다” “과녁에서 빗나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표적(target)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표적에서 벗어난 상태로서의 죄의 규정은 달라지게 된다. 표적이 하나님 자신이면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 혹은 계명이면 죄는 “반역(rebellion)”이 될 것이다. 표적이 하나님의 현존하심 안에서의 인간의 평안(well-being)이면 죄는 “질병(disease) 혹은 상처(wound)”가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와 해방이면 죄는 “죄와 원수에서의 속박(captivity)”이 될 것이다.


정리하면, 죄는 ‘실수, 비행, 잘못’ 등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내용에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행위와 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개인의 범죄와 죄책’ 같은 법률적 법정적 이미지에서부터 ‘노예상태’ ‘영혼의 질병상태’ 라는 의학적 이미지에까지 다양하다. 죄는 경험인 동시에 개념이며, 내면의 상태이면서 행위를 내포한다. 타락의 원인인 동시에 타락의 결과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내 존재의 분리상태를 말하면서, 그로 인한 인간의 내면적 상태를 포함한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도들부터 교부들에 이르기까지, 또한 2천년 기독교 전통은 죄의 의미를 한번에 정확하게 포착하기가 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죄를 명명할 때 ‘은유’를 사용해 왔다. 은유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실체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인생을 여행, 항해, 나그네 길, 선물 등으로 명명하는 것이 바로 은유를 통한 설명방식이다. 우리가 죄에 대해 쓰는 반역, 교만, 속박, 기만, 소외, 질병, 죽음, 범죄, 상처, 손상, 부채 등은 모두 죄의 은유이다. 교회가 죄에 대해 사용하는 은유가 풍부할수록 그만큼 인간문제를 이해하는 폭이 넓고 깊이가 심원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존재의 곤경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 주기가 쉬워진다. 은유가 적으면 적을수록, 인간의 곤경을 매우 제한된 측면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에 이를 다루어 줄 수 있는 폭과 깊이에 제한이 생긴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은 이 은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단순히 병렬적으로 나열하지 않았다. 곤경의 핵심적인 문제에 해당하는 중심적(primary) 죄의 은유가 있으며, 주변적(secondary) 은유가 있다. 무엇이 구원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의 핵심 문제인지에 따라 중심적 죄의 은유와 주변적 죄의 은유가 달라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 죄의 동전의 양면에 해당하는 구원의 은유도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죄책에 시달리는 사람이면 죄의 용서가 당분간 주요한 구원의 양상이 될 것이다. 법과 제도가 대단히 발전했던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는 인간의 곤경 문제를 압도적으로 인간의 반역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적 상황으로 보았다. 그리고 구원은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영벌을 면할 수 있느냐로 모아졌다. 이를 일컬어 법정적/법률적 죄와 구원이라 한다. 반면에,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는 압도적으로 인간의 곤경 문제를 죄로 인한 질병상태로 보았다. 이에 구원은 어떻게 하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것인가에 그 초점이 모아진다. 성경과 사도들의 전통에서통합되어 있던 것이 둘로 분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개신교는 로마카톨릭의 서방교회에서 분화되어 나왔기에, 죄와 구원이해에서 법정적/법률적 죄와 구원이해에 더욱 강한 영향을 받아왔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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