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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디옥교회 같은 새문안교회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0-12-13 오전 10:30:23
조회 823

안디옥교회 같은 새문안교회

한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교회가 있습니다. 한 교회가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영구히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시대 상황에 따라 쓰시는 교회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상황에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뜻에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응한 교회를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에 붙들리어 영원히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던 교회도 성령이 운동하시는 방향을 읽지 못하여 그 뜻을 거스르는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때로 사그라져 버리기도 하였고, 쓰임 받기는 하나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에서 사도행전의 앞부분을 장식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로 쓰임 받았던 교회가 예루살렘교회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는 채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선교의 주도권을 서서히 이스라엘 밖의 이방세계로 넘겨주게 됩니다. 이때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계선교의 중심에 선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으나 자신의 영적 문호를 활짝 개방하여 헬라파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교회의 중심에 서서 성장한 교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키워 이들의 세계선교를 뒤에서 전폭 지원함은 물론, 이들의 선교의 열매를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와 다른 교회들에게 전수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13장까지 잘 살펴보면 안디옥교회가 많은 지중해 교회를 제치고 하나님의 선교의 중심도구로 사용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안디옥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옛 자아(ego)를 기꺼이 벗어던지는 영적 유연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자체가 이미 예루살렘 박해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헬라인에게도 복 음 을 전 함 으 로 시 작 되 었 습 니 다 ( 행11:20~21). 교회로서는 손님같이 여겨질 수도 있는 바나바와 바울에게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행 11:26). 더 나아가 이들을 선교의 중심에 세워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폭이 넓은 마음 씀씀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관행, 패턴은 물론 기득권도 기꺼이 벗어 버리는 영적 유연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 외에는 교회가 어떤 다른 전제도 갖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둘째, 안디옥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identity)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유연성은 그 교회가 가진 확고한 정체성의 산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했습니다(행 11:26).
우리는 안디옥교회라 하면 흔히 해외선교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실상 안디옥교회는 선교하기 전에 양육과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는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갖고 있어,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선교와 해외선교의 열매로 나타난 교회입니다. 모든 교회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입니다. 그러나 흔히 선교가 교회성장의 수단이나 외적 팽창의 표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은 현실을 생각해 보면 깊이 배울 부분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런 면에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셋째, 안디옥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안디옥의 많은 선지자와 교사들이 주를 섬겨 금식했습니다(행 13:1~2).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선교를 위해 따로 세우라 하시니,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 두 사람을 안수한 후 선교사명을 감당케 합니다(행13:3). 교회가 이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며, 기도로 마무리했음을 보여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행위만이 아닙니다. 인간적 욕심을 내려놓고 성령의 뜻에 끊임없이 순종하기 위한 거룩한 몸짓이 기도입니다. 안디옥교회에 기도가 끊이지 않았기에 역사의 전환기에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바울을 선생으로 맞아들이고, 기도가 끊이지 않았기에 성령의 뜻에 순종하여 이방선교의 깃발을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안디옥교회를 새삼스럽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가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당연히 받아들였던 일상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테크닉이나 기교, 또는 사람을 모으기 위한 감각적 프로그램에 의해 운영되던 교회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의 본질인 ‘말씀과 예배와 기도’, 그리고 성도의 영적 성장을 위한 ‘양육과 훈련’에 충실한 교회는 이런 어려움을 돌파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코로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신실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런 면에서 교회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교회가 어떤 모습이며 어떤 가능성을 갖는지를 모범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우리 새문안 성도들이 2020년 한 해를 본질에 충실한 해로 신실하게 보내었다고 자부합니다. 정말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모든 사역이 정지된 가운데서 오히려 예배와 다양한 양육과 훈련을 통해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40일 기도여정’에는 대략 1,500명이 넘는 성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부부단위로 가족 단위로 비대면 아침예배를 드린 가정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무 것도 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보였는데 연말에 하나님은 57명의 새 생명을 우리 품에 안겨주셨습니다. 코로나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은 생명의 싹을 틔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2020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안디옥교회의 모범적 사례들을 잘 배워 더욱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충실히 새기며 2021년이라는 코로나가 지속되는 미지의 시간, 어둠의 시간,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기에 가능성과 소망으로 가득찬 시간을 향해 선한 도전의 발걸음을 내딛는 새문안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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