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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절에 생각하는 고난의 의미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1-03-09 오전 10:29:34
조회 970

사순절에 생각하는 고난의 의미

고난의 네 가지 종류
사람이 생을 이어가다 보면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사람이 받는 고난은 크게 네 가지 원인에서 온다고 봅니다.
자기 죄와 허물로 인해 받는 징벌적 성격의 고난이 첫째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훈련하여 쓰기 위해 주시는 고난이 둘째요, 자연재해 같은 천재로 인해 받는 고난이 셋째입니다. 징벌의 성격으로 오는 고난은 자기반성과 회개로 극복되며, 더욱 크게 쓰기 위해 주시는 고난의 경우는 이를 인내와 성실함으로 견뎌 열매를 맺습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고난을 당할 때는, 자연현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죄로 인한 것도 아니요, 훈련을 위한 것도 아니며, 천재지변 등의 외적 요인으로 인해 받는 것도 아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참여하는 가운데 받아야 하는 네 번째 고난이 있습니다. 이를 일컬어 ‘속량적 고난’ 또는 ‘구속적 고난’(redemptive suffering)이라 합니다.


속량적 고난
구약의 요셉, 모세,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위해 받은 고난이나 신약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위해 받은 고난이 전형적인 속량적 고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이 받았던 고난을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
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바울의 고난을 우리가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 징벌을 받아야 할 만큼의 과오를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훈련을 더 받아야 할 만큼 미성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찾아옵니다.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엿본 것으로 인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면서 삶이 고달파집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게 되니, 죄로 인해 죽어가는 그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게 됩니다. 
흔히 긍정의 신앙에 세례를 받은 현대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안 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바울의 영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유와 안식과 평안을 얻기 위한 것인데, 믿는 것으로 인해 또 다른 쇠사슬을 차는 것이 과연 ‘복음’이요 ‘좋은 소식’ (good news)이냐 고 물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자유,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
종교 개혁자 루터는 사도 바울이 겪는 속량적 고난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의 두 번째 자유(the second freedom)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의 자유가 있으니,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르게 됨으로 인해 나를 포박하고 부자유하게 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종속되지 않으며 오직 주님만을 목표로 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자신을 점점 종이라고 부르게 되는 특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유로운 영으로 살아가다 보니 이 삶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기쁘며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은혜가 깊어지면서 그 은혜를 받아 누리기에 자신이 얼마나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은혜가 깊어지면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은혜 앞에 서면 설수록 “내가 이것을 받기에는 애초에 턱없이 모자란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자신을 더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왜 저같이 부족한 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까?”라고 묻는 중에 어느 날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먼저 이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하신 것이 뜻이 있었다. 나 혼자 즐기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같이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를 먼저 부르신것이구나!” 그래서 여태까지 자신이 누리던 그 풍성한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세상을 위한 섬김의 종으로 스스로 내려가 속량적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9:1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내려가 받지 않아도 되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유! 루터는 이것을 두 번째 자유요, 동시에 가장 위대한 자유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 진정한 자유의 완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두 번째의 자유로 갑옷을 입고 속량적 고난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셨습니다. 영성이 깊다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이 느껴지고,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에 아파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이 깨지고, 망가지고, 상한 것을 보시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그 심정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자들을 보며 아파하고, 교회의 깨진 현실을 보면서 눈물 흘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으로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기적·배타적 삶을 뉘우치는 시간으로
사순절은 나를 위해 스스로 속량적 고난을 받아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며,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삶을 뉘우쳐 자신을 주님 가까이로 갖다 놓는 시간입니다.
이 사순절에 코로나 전염병의 위력에 빼앗긴 시선을 거둬들이고, 주님의 속량적 고난을 묵상하며 그 고난이 지닌 위대한 힘을 내 몸과 삶에 태워,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는 ‘두 번째 자유’를 노래하는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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