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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신 16:11, 막 1:15, 행 2:47)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2-01-02 오후 2:33:34
조회 945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신 16:11, 막 1:15, 행 2:47)

지난 2년 동안 겪은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척 교회와 미자립 교회의 70% 이상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고, 20~40대 한국 교회의 미래를 담당할 사람들의 신앙이 휘청거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한국 교회의 전략부재로 말미암아 사회적 신뢰도는 추락해서 교회는 사회로부터 게토(ghetto)화 내지고립화되었습니다. 안으로는 교회의 영적 생명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밖으로는 선교적 환경이 심각하게 악화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아직도 이들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가 닥치기 이전에 한국 교회의 위기는 시작되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중증으로 더 악화된 것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 (Ad fontes)
2천년의 기독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이 위기를 돌파해 나간 단순 명료한 길이 있습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Ad fontes)’입니다. 동양에서도 ‘혼란스러울수록 본질로 돌아가라’ 고 했습니다.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꼬여있고,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없을 때는 그 현상에 고착되지 말고 이 현상의 흐름을 타고 올라가 그 원천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면, 어느 순간 지금의 이 문제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고 꼬여있던 실타래는 풀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기의 때일수록 교회는 말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기도의 높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원천에서 복음의 생명을 끌어 올리고, 기도의 높은 곳에서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과 만나 그분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결국, 돌아가야 할 원천은 ‘복음 그 자체’입니다. 막 1:15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서 때(Kairos)는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구속사적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초입에 작금의 현실을 그저 인간의 무절제한 탐욕과 이기적 욕구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어 시작된 작은 전염병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 이 팬데믹의 출구가 보이지 않고 더욱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탐욕스러운 문명에 대한 예언자적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지 않고 오히려 이 문명을 지탱해 나가는데 일조한 교회에 대해 지금 어떤 일을 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려 가고 있습니다. 즉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이 이 팬데믹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세상의 고통을 보면서 제사장적 사명을 띤 교회가 중보하고 회개해야 할 때 입니다.
모든 온전한 시작은 ‘회개’로부터 출발합니다. 복음이 진정 복음답게 역사하기 위해서도 회개와 회심은 선행되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회개는 ‘슈브(shub)’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동안 걸었던 죄악 된 길에서 구체적으로 돌이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회개는 구체적인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수반합
니다.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되려면 지성과 의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변화되는 힘의 원천은 ‘복음 자체’에 있습니다. 즉 가던 길에서 돌이키는 힘과, 하나님과 그 말씀 안에서 사는 힘 양자는 모두 ‘복음 자체’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모든 핵심적 변화의 관건은 이 복음이요, 원천으로 돌아가 붙잡아야 할 진리도 복음입니다. 여기서 복음, 즉 복된 소식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시작된 모든 크고 놀라운 사건들, 그분이 가르쳐 주신 모든 진리의 말씀이 복음이지만 가장 단순 명료하게 말하면 복음은 이것입니다. “ 삼위 하나님은 왕이시요,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모든 연이은 복된 소식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기에 그분은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살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심판자가 아니요 아버지시기에 그분은 자기 자녀의 죄악을 용서하고 끝없는 사랑으로 구원하십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모든 파생적 진리-용서의 은총, 영생의 선물, 견인의 은총 등-는 여기서 나옵니다.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초대교회 때의 성도들은 이 단순하고 강력한 복음의 진리로 온 몸과 영혼이 감전되었던 자들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한 영혼을 휘감기 시작하자 이들은 놀라운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니 세상의 죄와 악의 권세가 두렵지 않으며, 그동안 자신들이 포로 되어 왔던 온갖 심리적, 영적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놓임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인 사실을 신뢰하니 인생을 담대함과 참된 자유함으로 살아가는 내적 능력이 생겼습니다. 행 2:42~47절에 이 광경이 나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45). 사람이 물질에 대해 가진 욕망은 자신이 사는 인생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두려움에서 온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에게 한없는 내적 평안과 자유함을 가져와서, 그 사람이 가진 물질에의 욕망을 무장 해제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누며, 섬기며 살 수 있는 힘을 주기 시작합니다. 초대교회의 유무상통 정신은 이 복음의 내적 자유함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으로 사람들은 자유와 해방을 경험했으며, 이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완전히 일신(日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는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지 못하는 삶을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행복한 전율
(happy trembling)’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습니다”(행 2:47). 교회의 존재됨 자체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신학적으로는 교회가 ‘공공성(publicity)’을 실현한 것입니다.

흔히 한국 교회가 경제성장기에 번영복음에 경도(傾倒)되어 내재성, 내면성, 개인성을 강조하면서 복음의 공공성을 상실했다고 말합니다. 그것 때문에 세상과의 괴리를 가져왔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본질 자체를 들여다보면 복음은 이미 그 안에 내재성뿐만 아니라 관계성을 갖고 있으며, 내면에서 시작하지만 세상을 향해 확장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개별성뿐 아니라 관계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간과해 왔습니다. 코로나로 고통하는 시기지만, 오히려 이때에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그 근원에서부터 나를 새롭게 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며, 세상을 행복한 전율에 빠지게 하는 복음의신비성과 공공성을 함께 회복하는 2022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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