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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3) - 가정, 새로운 땅 끝을 향하여!(창세기 2:18-25)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3-11-05 오전 7:48:32
조회 639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3) - 가정, 새로운 땅 끝을 향하여!(창세기 2:18-25)

결혼은 진정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가

지난 2022년, 통계청이 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은 결혼이 필수라고 보는가?’ 통계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점점 결혼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나 취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요 저술가인 팀 켈러는 그의 책 

『결혼에 대하여』에서 미국사회에 사는 젊은이들 사이에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째는 경제적 요인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기르려면 많은 경제적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둘째, 결혼은 개인이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정체성을 꽃피우는 삶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기에, 자기를 성취하는 인생을 살려고 하는 젊은이들은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셋째,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보다는 고통과 역경을 가져오는 불행한 삶이 시작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현대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이런 통념은 진실이 아닐뿐더러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 또한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결혼을 하면 경제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재고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택이나 초기결혼자금 문제를 제외하면, 결혼한 사람들이 싱글 때 보다 훨씬 많이 저축하고 또한 빨리 경제적 자립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의 자아성취나 정체성에 대해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해석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보통 정체성이 무슨 알갱이나 싹처럼 우리 안에 있다가 자연스럽게 발현되어 나오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정체성은 내 안에서 발아하여 꽃피워질 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속한 공동체, 나의 배우자와 더불어 살면서 그 형체가 드러나고 깎이고 닦이고 다듬어져 간다. 즉 자아의 정체성은 사람들 특히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면서 마침내 형체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결혼생활은 자아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현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온전케 하며 완성하는 터전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이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결혼하면 불행해질까봐 두려워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독신으로 살아서 인생후반부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수치보다, 결혼해서 이런저런역경을 넘어 행복한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이 가진 결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객관적 진실과는 달리 좀 과도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결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성경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성경의 첫 책 창세기부터 이미 결혼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끝난다. 그만큼 기독교 신앙은 결혼을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본다는 뜻이 있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신앙에는 결혼을 했을 때만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something)’이 있다는 뜻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느 날 아담이 혼자서 에덴동산을 관리하고 돌보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런데 그 혼자 있는 모습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셨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 여기서 ‘좋지 않다’는 히브리어 <로 토브>인데 <로>는 ‘~이 아니다’, <토브>는 ‘좋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더라” (창 1:31) 하셨을 때의 ‘좋다’와 같은 어원이다. <토브>는 ‘선하다’, ‘행운이 있다’, ‘복 되다’, ‘유익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는 무슨 뜻이겠는가. 혼자 사는 것은 선하지도 않고 좋아 보이지도 않으며, 행복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에서 뼈와 살을 취해 또 다른 사람을 만드시고 이를 아담에게 주셨다. 이때 아담은 그를 ‘여자’라고 부르고 성경 최초의 노래를 한다. 그때 그가 노래한 첫 단어가 히브리어 <합파암>이다. ‘드디어’, ‘마침내’. 마치 자신이 그토록, 목이 타들어가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어떤 것이 이루어졌다는 표현이다.

창세기는 남자와 여자의 하나 됨을 몸의 연합으로 표현한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여기서 몸은 단순히 몸이 아니다.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의 연합을 뜻한다. 신앙에서 최고의 단계를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보는데, 이 연합을 성경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유사한 모습인 부부관계로 이 연합을 설명한다.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 된 우리와의 연합! 이 연합은 그야말로 완벽한 연합이다. 이 완벽한 연합에서 온전한 사랑이 나온다. 지체됨의 극치가 부부간의 관계이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그 색깔이 하나가 아니라 온갖 무지개색으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설렘으로 시작해서 그 다음은 사랑으로, 결혼을 하면 충만함으로. 그리고 이제 결혼은 현실이니까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어서 한동안 서로 내게 맞추어달라고 샅바싸움을 한다. 이 갈등의 기간을 서로 성숙되게 잘 극복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인 되셔서 두 사람 사이에 있으면 절대로 판이 깨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갈등 끝에 비로소 상대방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다. 이때부터 이 관계는 정말 영혼의 친구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그야말로 살 중의 살이고, 뼈 중의 뼈가 된다. 여기서 진정으로 사람이 서로 마음을 합할 때 어떠한 참된 평안과 기쁨이 오는지를 배우게 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와 평안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결혼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결혼생활을 못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 결혼하고 사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행복하다. 무엇보다 결혼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진실이 너무 많고, 결혼을 해서 이러한 연합된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절대로 신앙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기독교인 중에 적어도 그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라면 끝까지 독신으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님을 위해 독신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면, 교회 청년들이나 젊은이들 중에 ‘미혼족’은 있어도 소위 ‘비혼족’은 없다.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고개가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결혼시켜 주셨는데, 요즘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은 결혼에 절실하지 않다.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간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영혼의 친구를 만나고, 내가 그런 영혼의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이 뭔지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간절해야 한다. 주님께 내 인생의 배필을 만나게 해달라고 가장 첫 기도제목으로 올려 구해야 한다. 그게 그리스도인이다. 

결혼이 땅 끝이라면, 그곳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신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각 심령에 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또 어떤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성경의 사도행전이라는 책은 제자들이 바로 이 말씀을 가지고 땅 끝을 향해 가는 성령의 행전이다. 그렇다. 제자는 복음의 최전방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계선을 넘어간다.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난 남자가 경계선을 넘어 여성들의 아픔을 들어주기 시작하고, 거듭난 주인이 종을 친구로 대해주고,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백인이 흑인을 형제라 부른다. 유대인이 상종도 않던 이방인을 위해 목숨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나눈다. 이것이 전부 복음을 가지고 세상이 쳐놓은 장벽을 기꺼이 넘어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땅 끝에 서려고 하지도 않고 이러한 최전방을 넘어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저 너머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저 너머는 안전하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고 위험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는 그 땅에 서서 그 땅의 경계를 넘어간다. 왜냐? 주님이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니까.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있어 결혼은 점점 땅 끝이 되어가고 있다. 그곳은 미지의 영역이고 불확실하고 온갖 두려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주저주저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너의 짝을 찾아, 저 땅 끝에 서서 그와 함께 미지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거기서 나는 너와 새롭게 만나기를 원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너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너의 땅 끝에 다시 서라! 그리고 너의 경계를 뛰어 넘으라!” 이 새로운 땅 끝을 향하여 기꺼이 인생의 모험을 감행하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미 이 땅 끝을 넘어 새로운 땅에 들어와 이런저런 씨름을 하고 있는 분들은 분명 하나님이 호주가 되어 이끄시는 가정이니,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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