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내

“ 다시 거룩한 교회로 ”(레위기 19:2, 요한복음 17:17~19)

본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01회(2017년) 총회 주제를 "다시 거룩한 교회로"로 정했습니다. 이 주제에서 ‘다시(Re)’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Re)’라 함은 본래의 모습으로의 회귀 혹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가 그 본래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에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래 모습은 ‘거룩’입니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그 본래의 모습인 거룩을 상실해가고 있기에, ‘다시(Re)’ 그 본래의 모습인 ‘거룩’을 회복해야 하기에 이런 주제를 정한 듯합니다.

교회 역사상 교회가 항상 그 본질인 거룩함을 잘 보존해 온 것은 물론 아닙니다. 초대 교회는 점차 그 거룩함을 잃고 세속화되어 가다가, 14세기 후반 경 존 후스, 위클리프 등에 의해 거룩한 교회로의 회복을 위한 개혁운동이 표면화되었으나 그들의 개혁운동은 온전히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가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 부속 교회당 정문에 ‘95개조의 논제’라는 제목으로 돈을 받고 죄를 면해주는 면죄부(免罪符) 판매 등 교회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하는 문서를 전격적으로 게시했는데, 이 같은 항거는 당연히 폭풍 같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를 필두로 형성된 개혁교회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개혁’이란 교회의 본질인 거룩함을 보존하기 위한 각양의 조치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의 명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는 세상 가치관에 서서히 함몰되어 가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를 향해 쏟아 붓는 세상의 질책들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 스스로가 익히 느끼는 바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교회는 개혁되어야 함이 당연한 과제입니다. 그 개혁이란 바로 교회의 본질인 거룩함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어떤 시기를 정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특별히 2017년은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모든 교회가 개혁에 박차를 가해 교회의 본질인 거룩함을 회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과업이라고 여겨집니다.

성경 레위기 19장 2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여정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이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나누다’ ‘구분하다’ ‘분리하다’라는 의미로서, 일체의 부정과 악으로부터 철저히 구별된 상태를 말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 가는 과정에서, 또 목적지인 가나안에 도착해서 수많은 이방 민족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과 악한 관습에 묶여져 있는 그 이방인들과 섞이지 않기를, 즉, 분리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들 역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쫓아 그들의 모든 삶이 죄와 불의 가운데 빠져 있는 이방 민족과는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기에 이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별된 사람들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여정을 행진해 가듯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거친 세상 속을 행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非)거룩한 수많은 이방인들을 만났듯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속에서 그들의 거룩함을 상실하도록 유혹하는 수많은 이방인적인 것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듯이,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해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차별성을 지녀야 합니다. 성별된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함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리스도인 개인의 거룩함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거룩성을 회복할 때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할 것이며,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을 회복시킬 역동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그 본질인 거룩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개개인은 반드시 거룩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교회도 회복됩니다. 거룩함을 회복한 교회는 나아가 세상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위주로 달려왔습니다. 여기서 성장이라 함은 교인들의 수적 증가와 교회건물을 더 크게 짓고, 교회의 시스템을 더욱 좋은 것으로 갖추고자 하는 등의 외형적인 성장을 말합니다. ‘교회성장세미나’는 목회자들에게 엄청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물론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수적으로, 외형적으로 굉장한 부흥을 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수적 성장과 비례하여 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목소리들도 크게 들려오더니 이제는 반 기독교적인 무리들의 목소리가 세력을 형성하기에까지 이르렀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교회는 교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본 교단 총회가 ‘다시 거룩한 교회로’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회들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교회들 스스로가 교회의 거룩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교회는 다시 거룩한 교회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거룩한 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개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개혁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원래의 상태란 바로 ‘거룩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끊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루터 이전의 몇몇 사람들도 이미 개혁을 시도했으나 그 결과는 화형 등의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루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교개혁은 성공했습니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루터 개인은 물론이고 온 교회가 온 나라가 엄청난 산고를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개혁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개혁은 단순히 조직 개편이나 직제 변경이나 프로그램의 변화 등의 외면적인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개혁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가치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을 부르짖었듯이 말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7장 17–19절에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준비를 하시는 긴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듯이 이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야 할 입장에 서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미래의 사역을 염두에 두시고 이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즉, 자신이 그러셨듯이 제자들도 그들의 사역을 감당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들이 세상의 악의 세력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것이라고 여기셔서 ‘거룩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진리’로 가능하며, 그 진리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정의하십니다. 이어 첨언하시기를 예수님께서 자신도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최고의 순종, 즉,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십자가에 죽기까지의 순종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 증명된 예수님의 거룩하심이 바로 제자들의 거룩함의 근본적 동인이 되기 때문에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거룩함의 회복, 진정한 개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교회들이 절대불변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암송하고, 말씀에 박식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영육간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거룩성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말씀은 넘쳐나지만 오히려 그 말씀이 현대문화, 현대인의 가치관에 종노릇하고 있는 현실, ‘우리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시려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거룩함에 무감각해진 현실 앞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다시’ 거룩하게, 우리 교회를 ‘다시’ 거룩하게 하기 위한 뼈를 깎는 듯한 믿음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작금에 유난히 혼란에 직면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정세 앞에 본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다시 거룩한 교회로"라는 주제를 제시한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사람이 거룩성을 회복해야 하고, 우리가 속한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삽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바로 세상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아주 강력하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