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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해진 한국의 저출산율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였다. 올해 1월, 2월 통계에 따르면 그보다도 더 낮은 0.6명대로 내려갔다. 게다가 작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5명이었다.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로우 다우섯은 “한국의 저출산율은 14세기에 유럽을 덮친 흑사병이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결과”라고 했다. 일본 경제지 <머니1>은 “한국은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혹자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이나 높은 인구밀도로 인한 경쟁과열 등을 근거로 한국의 저출산율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저출산 문제는 인구 고령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구감소로 인해 인구의 구성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진다는 데 있다. 노동인구부터 국방의무의 가용인력, 심지어 수혈할 수 있는 사람까지 국가 자체가 철저히 기능장애를 겪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저출산 문제이다. 저출산 문제는 후진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겪는 증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한국 저출산 문제의 세 가지 원인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 과도한 경쟁 속에서 남들보다 뒤처질까 불안해하며 결혼과 출산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한국은행통계 조사에 따르면 경쟁압력이 강할수록 희망하는 자녀수도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쟁구조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열악한 수준이다. 비정규직의 비중이 2022년 대비 41.4%로 다른 OECD국가들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정규직이 되는데 시간도 걸리고 삶이 불안정하고 치열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결혼도 출산도 미룬다는 것이다. 둘째, 높은 인구밀도에서 오는 주거비 부담이다.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주거비가 높고, 그래서 결혼도 늦게 하고 아이도 적게 낳는다는 것이다. 결국 경쟁압력이 심해지면서 고용/주거환경이 불안해지니 이를 안정시키는데 필요한 시간이 길어져 결혼도 늦추고,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구조가 되지 않으니 불안해서 아이를 될 수 있으면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이다. 젊은 세대에 있어 결혼과 출산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결혼은 서른 살 이전에는 꼭 해야 하는 지상과제요, 아이는 둘은 낳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이 생의 주기에서 필수라고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이것이 문제다. 인간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 생명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백성’이다. 내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말이 가진 의미는 나의 궁극적 귀속의식이 세상나라에 있지 않고, 이 시대의 가치관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혼과 출산은 기독교적으로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신앙적으로는 결혼과 출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과 직결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 있다. 바로 ‘생명권’이다. 생명이 번성하고 충만하며 행복하게 살 권리이다. 결혼과 출산은 이 권리에 속한다. “하나님이 그들(하나님 형상으로 만든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하셨다. 여기서 ‘생육’은 히브리어 페루로, ‘열매가 가득 넘치는 삶’을 가리킨다. 삶의 질적인 부분을 말한다. 또한 ‘번성’은 히브리어 우레부로, ‘수가 넘쳐나다’라는 뜻이다. 이는 양적인 부분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받고 번영하며 번성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이때 하나님은 그러한 자녀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신다. 이것이 모든 생명의 권리요 생명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이 생명을 꽃피우기 위해 우리에게 결혼제도를 주신 것이다. 창세기 2장은 이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 어느 날 그를 보시더니,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셨다. 그래서 그를 잠들게 하신 후에 그의 갈빗대에서 여자를 만드시고 이 둘을 부부로 묶어 주신다. 이렇게 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최초로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으로는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제도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축복의 연장선상에서 이 결혼제도가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해 결혼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언약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 생명창대권 하나님 백성은 언약백성이다. 하나님 자신이 작정하고 택하신 사람들에게 하신 특별 언약이 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이는 생명권을 넘어 ‘생명창대권’이다. 내가 네게 복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네 존재 자체가 복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는 결코 아브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그의 후손, 하나님 백성인 우리에게 주시는 언약이다. 이 축복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시편 23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지나고 원수에게 조롱도 당하지만 그는 인생의 황혼 녘에 노래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내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은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 태어났다, 그것이 내 운명이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내 축복이다. 그렇기에 불안해 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 약속의 신실하심을 믿으라 경쟁압력 때문에 결혼을 미룰 것인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고 난 뒤에 생활이 안정되면 결혼도 하고 아기도 갖겠다는 것인가. 남들보다 뒤처질까봐 불안해서 결혼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기를 낳는 것은 생각도 못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하?사?람이다. 즉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려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그런데 지금 사회의 가치관과 통념에 함몰되어서 내 하나님의 실력을 의심할 것인가. 내가 정말 언약백성이라는 것을 믿는가. 하나님 자녀이기에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님이 주실 것을 믿는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마 6:32)고 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담대하게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세상 사람처럼 출산하면 경쟁에서 뒤처질까봐 출산을 포기하지 말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으니 담대하게 그 축복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브람의 인생은 소위 저출산 인생이었다. 그의 나이 99세 때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 이삭을 딱 하나 주셨다. 출산율 1.0명이다. 이 아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해서 에서와 야곱,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출산율 2.0명이다. 이후 동생 야곱이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것 때문에 형의 미움을 사 야곱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렇게 형을 피해 수백 킬로를 걸어 도망쳐 들어간 곳이 밧단아람 외삼촌 집이다. 여기서 무려 20년 동안을 온갖 고생을 하며 종노릇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비정규직이고 일용직이다. 게다가 고용주 외삼촌 라반은 악덕 기업주이다. 그때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훗날 야곱은 이렇게 술회한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창 31:40).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겠는가. 또 이어서 말하기를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창 31:41)이라 했다. 십사 년 동안이나 딸 둘을 아내로 얻기 위해 거의 무임금으로 노동했다는 뜻이다. 또한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기업주에게 임금도 못 받는 무임금 노동을 하고,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품삯을 열 번이나 사기당하는 부당 고용행위를 반복해서 당했다는 뜻이다. 고용조건이 불안정하다 못해 아주 바닥이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내일이 불안해서 다자녀는커녕 출산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야곱이 낳은 자녀가 몇 명이냐. 12명이다. 합계출산율 12명. 지금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말하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때가 되어서 이제 이 약속을 이루시려고 야곱의 조건이 어떠하든 환경이 어떠하든, 그가 만나는 세상 사람이 악하든 선하든, 생육하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신다. 언약백성이요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불안해서 못 낳겠다면 그건 세상 사람이 갖는 마음이지 하나님 백성이 가질 마음이 아니다. 다른 경력을 쌓기 위해 결혼을 뒤로 미루는 것은 가치관의 우선순위에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결정하고 믿음으로 실행하라! 하나님이 언약백성에게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신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한국에 기독교가 있는 한 한국은 망하지 않는다고. 이유가 무엇인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속가치관에 의해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하는 이때, 언약백성인 하나님 자녀들은 믿음으로 담대하게 결혼하고 믿음으로 과감하게 자녀를 낳고, 교회는 이를 맘껏 지원하고 평생을 책임져서 인구 중의 절반은 하나님 백성이 차지하는 나라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다! 한국기독교 때문에 대한민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 소망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출처 : 새문안웹진(http://webzine.saemoon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