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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의 거룩성과 공공성(2) - 거룩성 안에서의 공공성 -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2-05-01 오전 10:47:05
조회 888

교회의 거룩성과 공공성(2)
- 거룩성 안에서의 공공성 -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는 거룩성 안에 있는 공공성에 대해 살펴본다.

거룩성 안에서의 공공성은 교회의 사회 혹은 세상에 대한 공공성의 독특성을 가리킨다. 즉, 교회의 공동선 추구 혹은 공적 영역에의 참여와 헌신은 일반적인 공적 헌신과 참여와 다른 독특성과 경계(boundary)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다원적 시민사회에서 공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교회를 세상 안에 있기 때문이요, 세상을 향해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임은 교회의 거룩성 안에서의 책임성이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의 거룩성은 그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은총이다. 이 삼위 하나님의 속성에의 참여가 교회의 거룩성을 형성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신다. 그는 “만유의 아버지시다.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 (엡 4:6). 하나님은 세상에 계시지만(내재성), 세상에 포함되시지는 않는다(초월성). 성육하셨지만, 동시에 부활하여 승천하셨다. 하나님이 이 거룩한 속성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거룩성을 품은 교회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의 어떤 기관과도 다른 교회 자신의 고유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스 큉은 말했다. “교회는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즉 이 세계에서 나오고, 이 세계의 다른 공동체들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 교회는 가족, 민족, 국가, 자연 공동체나 운명 공동체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이는, 교회가 자신이 속한 공적 사회에 동화되거나 일체화 되지 않는 고유한 영성적 영역과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흔히 교회의 사회(국가)에의 책임성, 내지 공적헌신(봉사)을 말할 때, 우리는 교회가 사회 공동체의 필요(need)와 요구(desire)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행동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거룩성 안에서의 공공성”의 측면에서 볼때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공동체나 교회가 터한 공적사회는 선과 악, 의와 불의,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물론, 현실 교회도 이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사회(국가)의 요구에 무조건 반응하는 것이 공적 책임성을 감당하는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요구 중에는 악과 불의에서 나온 요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교회의 진정한 공공성은 이런 악한 요구를 물리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요구를 하는 주체에 대해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는 것을 통해 더 높은 가치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1차대전 전후의 독일교회를 생각해 보자. 당시 독일사회는 1차대전의 패망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패전에 따른 전쟁부담금의 부담, 폐허가 된 국가, 그리고 어수선한 정치구조 속에서 독일은 신음하고 있었다. 독일국민들은 실추된 독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고, 국가를 재건할 메시아 같은 존재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때, 독일에 히틀러가 나타났다. 당연히, 그는 독일 국민의 고통하는 부분을 정확히 읽고 있었고, 그들의 고통에 반응하며, 그들의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시켜 줄 독일제국의 부활을 약속했다. 그리고, 독일국민 특히 중산층은 이에 열광으로 반응했다. 이렇게 해서 히틀러의 나찌즘은 독일국민의 필요(need)와 요구(desire)에 응답해 주었다. 즉, 1930년대의 독일나찌즘은 히틀러의 독재적 발상이 아니라, 독일의 국민과 히틀러의 합작품이었다 할 수 있다. 이때, 독일 교회인 루터교는 독일나찌즘이 갖고 있는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독재적 발상을 외면하고, 그저 독일국민들의 즉자적 욕구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교회가 사회전체의 악한 요구에 반응하느라고, 교회 자신의 고유한 거룩성 – 그리스도에 대한 배타적 충성 – 을 포기한 것이다. 만약, 이때 바르트나 본회퍼 같은 예언자적 신앙고백운동이 나오지 않았다면, 2차대전 후 독일교회는 결코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교회가 거룩성을 도외시한 세상적 공공성에 즉자적으로 반응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룩성과 공공성의 긴장관계는 교회의 세상참여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거룩성 안에서의 공공성은, 공공성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분별해 주어 공적 참여와 헌신이 세속적이고 타락한 헌신이 되지 않도록 그 방부제 역할을 하며, 세상을 한 차원 높이 승화시키는 새로운 촉발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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