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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구 온난화의 위기 앞에서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2-07-03 오전 11:52:16
조회 709

지구 온난화의 위기 앞에서

서(序)
지구 온난화의 위기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습니다. 기후 이상으로 인한 폭염, 반복되는 가뭄과 이로 인한 산불피해, 남극과 북극의 해빙 현상과 이로 인한 전 세계 해수면 상승, 동식물의 멸종현상 등을 넘어 이제는 기록적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수확량의 감소와 어획량의 감소 등 식량위기까지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2050년까지 이 온난화를 잡지 않으면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될 정도의 재앙을 맞게 될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과 달리 우리 인간의 반응과 대응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미온적입니다.

기독교가 생태위기의 원인제공자다?
많은 생태론자들이나 환경론자들은 생태계가 엄청난 위기를 겪는 원인 중의 하나가 기독교라고 비판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중심적 종교라는 것입니다. 동양의 다른 고등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너무나 인간중심적 세계관(human centric worldview)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세계관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살아갈 모든 지구의 환경을 예비해서 만들고, 여섯 번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어 그 안에 두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집 잘 짓고, 그 안에 살림 다 만들어 놓고, 침대도 푹신하게 준비해 놓고 주인이 그때 와서 사는 것과 같다는 식입니다. 생태론자들이 볼 때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요, 그 주변으로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그 주변으로 피조세계가 구성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17세기 근대사회가 시작된 이래 많은 학자와 목회자들은 성경을 그렇게 해석해 왔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이 말씀을 인간이 전생태계를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의 해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이다!
창 1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생명을 만드신 이유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생물을 번성하게 하려고 생명을 만드셨습니다. 자연이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22절에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에게만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빚으신 모든 생명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인간은 분명히 이 지구에서 번영하고(flourishing) 번성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번영은 하나님의 문화명령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구약신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전체의 사상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핵심은 영혼구원만도 아니요,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영혼의 구속, 인간성의 회복, 전인의 치유 그리고 인간성의 꽃피움, 이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은 영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번영하는 권리를 인간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께서 다른 생명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주셨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명령을 받았고 권리를 갖고 있지만, 그 번영권은 경계를 갖고 있다 는 뜻입니다. 어떤 특정한 범위를 넘어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다른 피조물의 생명권을 파괴하고 말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생육하고 번성할 권리를 갖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 세계관(theocentric worldview)”입니다!

내 번영과 생육을 위해 다른 생명의 권리를 침해한다? 그것은 기독교적으로는 죄악입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동물들의 생태계를 침범하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새와 산짐승의 서식처를 파괴한다? 고삐 풀린 욕망의 기차처럼 된 물질문명의 시각으로 볼 때는 개발인지 모르지만, 기독교적 창조신앙으로 볼 때는 파괴요, 죄악입니다. 인간의 번영을 위해 다른 피조물의 생명을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반드시 그런 개발을 하려면 다른 곳에 대체 서식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 기독교적인 방식입니다.

지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달려가는 물질주의 문명이 이렇게 창조주가 만든 세계를 유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겁니다. 문명이 집단으로 죄를 짓고 있는데 인간만 편리하면 된다 생각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는 문명을 예언자가 되어 꾸짖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눈감아 주고, 심지어 동조하기까지 합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이지요.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
성경은 여러 번 다른 생명을 위하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너희가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거든 그에게 끌어다 주어라”(출 23:4). 이것은 원수 사랑의 계명이 아닙니다. 원수는 미워도 그가 부리는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거든, 그 말 못 하는 짐승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그 주인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추수할 때에 곡식을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지 말고 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 (레 19:9)고 말씀합니다. 왜요? 첫째, 그 지역의 객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둘째, 공중의 새와 짐승들을 위해서 창조주께서 자기 피조물을 살피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안식년 제도입니다. 7년째 되는 해에는 농경을 하지 않습니다. 땅을 그대로 묵혀 둡니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을 막고, 자연도 쉬고 땅도 쉬고 짐승이 편히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얼마나 극진히 살피고 돌보시는지 모릅니다. 이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받아 하나님의 영을 가졌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가 이 피조세계를 함부로 대하고, 그 안의 생명을 우리 번영을 위해 죽게 만들면 안되지요. 이런 면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의 그릇된 자연관을 회개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동산인 이 지구의 정원사로서의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이 공존, 공생, 공영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피조세계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결(結)
지금부터 작은 것 하나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플라스틱 빨대는 쓰지 마십시다. 텀블러 소지를 일상화하십시다. 일회용 종이컵의 사용을 줄이 십시다. 이면지를 꼭 활용하고, 필요 없는 것은 복사하지 마십시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는 걸으십시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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