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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와 근본주의 신앙(3)
결론 근본주의 신앙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탈역사적이고 초월적인 것 같으면서도 반공주의와 애국주의, 반동성애 등 특정 정치 이념과 문화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전투하는 역사몰입적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또 성경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면서도 성경 전체가 아닌 특정 부분에만 몰두하는 비성경적 태도를 갖고 있다. 아주 개인주의적이면서도 대단히 집단적 응집력이 강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근본주의 신앙은 그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근본주의 신앙인이라고 인정하기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바른 신앙 형성의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 자신이 복음의 본류인 복음주의와 종교개혁 신앙, 그리고 2천년 전통의 정통기독교 신앙과 관련이 없는 근본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지의 유무는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다.
첫째, 특정한 신앙, 신학, 정치이념, 문화운동에 대해 비판을 넘어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근본주의 신앙의 발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종교개혁자 루터)의 토대 위에 세워진다. 요 13:35절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의 영성이 바른 기독교적 영성에 기반한 신앙인지의 여부는 그가 사랑의 영성을 견지하며 하나님의 일을 추구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근본주의 신앙은 진리의 사수를 표방하면서 끊임없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며, 상대방에 대한 정죄와 전투적 영성을 기독교 신앙에 대한 충성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은 무신론적 공산주의 혹은 북한식의 독재적 사회주의와 양립할 수는 없다. 또한 창조신앙에 반하는 동성애를 찬성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신앙적 입장과 다른 흐름에 대해 적개심과 전투적 신앙을 부추겨 영성으로 다가가느냐, 아니면 인내심을 갖고 사랑의 영성으로 접근하여 진정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이런 면에서 근본주의는 사람 안에 분노, 두려움, 불안, 의구심을 불어 넣어 그것을 따르는 사람을 움직이려 한다는 면에서 우리가 깨어 주의해야 할 영적 흐름이다.
둘째, 앞서 말했듯이 근본주의는 현대가 낳은 과학적, 이성적 산물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현대신학은 말할 것 없고, 현대의 물리학 등 자연과학, 의학 등의 응용과학뿐 아니라 심리학, 철학 등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산물을 부정한다. 근본주의 자체가 현대주의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근본주의 신앙은 부지불식간에 배타주의와 독선주의로 흘러가기 쉽다. 하지만 이는 역사를 주관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현대의 급격한 세속주의의 흐름 속에서도 역사를 이끌어 가며, 세속역사안에서 세속역사를 통해 구원역사를 이뤄가심으로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가 낳은 다양한 이성적, 합리적 산물들은 구원받은 이성으로 여과하여 수렴해야 할 것이지 무조건 저항하거나 거부할 일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근본주의 신앙은 지성적, 영성적으로 게으르다 할 수 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구원받은 이성으로 여과될 때,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은 없다(딤전 4:4~5). 인문학, 사회과학, 철학, 과학 등 모든 것은 합력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데 사용될 수 있다 (롬 8:28).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자신감이다! 그런데 근본주의는 종교개혁 전통의 하나인 특정 신학흐름을 절대화하여 나머지 정통신학들을 전면 부정한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셋째, 근본주의는 성서중심적인 것 같지만 성경 66권 전체에 흐르는 보편적 가치들을 통합적으로 다뤄주지 못하고 있다. 성경은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고루 간직하고 있다. 자유, 정직, 성실, 근면, 경건, 애국 등 보수의 가치와 개방성, 유연성, 평등, 복지 등 진보의 가치를 포괄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문제나 박애 등 이념을 뛰어넘은 가치도 있다. 그런데 근본주의는 반공주의 등 특정 이념에 함몰하여, 보편적 성서 중심 신앙을 벗어나 있다. 만일 성경이 가진 폭넓은 스펙트럼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절대로 특정 정치 이념을 절대화하여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심지어 마귀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경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존중한다면 자연히 대화와 타협, 포용과 개방이 가능한 신앙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은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이라는 중요한 모토를 교회에 제시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교회는 부지불식간에 들어와 있는 누룩과 같은 근본주의의 폐해를 직시하고, 신학과 신앙 안에서 이 근본주의 영성을 극복하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의 선교지형은 확대될 것이며, 민족복음화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 1:4~7) * 이 글은 필자가 주간지 2022년 10월 둘째주 <가스펠 투데이>에 기고했던 글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