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 교회 표어
모이기를 힘써, 생명이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소서! (행 2:46-47)
교회 일정

담임목사

HOME 담임목사 새문안강단
  • 담임목사 소개
  • 설교
  • 성경묵상ㆍ강해설교
  • 특별설교
  • 새문안강단

새문안강단

제목 오직 그리스도께 충성 본회퍼(D. Bonhoeffer) 바로 알기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5-03-02 오후 3:16:05
조회 133

오직 그리스도께 충성 본회퍼(D. Bonhoeffer) 바로 알기

요즘 정말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합니다. 모더니즘과 대비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팩트(fact), 즉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대는 이성과 합리성과 상식에 입각해서 객관적 사실 여부를 먼저 아는 것이 진리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반면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이성보다는 느낌(feeling), 합리성보다는 직관(intuition), 보편적 상식보다는 개인이 소속된 집단의 기호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에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본인(들)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사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라가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사실’이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실체적 진실이나 진리가 무엇인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진리나 진실로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진실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 속의 인물에도 해당됩니다. 한국사회를 양분시켜 놓고 있는 많은 주장들이 보수, 진보를 떠나 공히 이런 부류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그중에 하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즘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놓고 나라가 말 그대로 두 쪽이 난듯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본회퍼(D. Bonhoeffer, 1906~1945)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는 20세기 초 독일의 신학자요, 목회자이면서 히틀러의 나치즘에 저항하다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20세기 순교자입니다. 사실 그의 신학과 신앙은 우리 나라 군사독재 시대에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신앙인의 표상으로 당시 진보성향의 젊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4~5년 사이에 전혀 다른 맥락으로 그에 대한 말이 한국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오르내립니다. 처음에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극우 근본주의 성향의 모 목사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본회퍼를 그들의 의로운 신앙의 모델로 인식합니다. 그가 행동하는 신앙인이요, 값싼 은총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따라 실천하는 은총을 소중히 여겨, 나치의 독재와 폭압에 저항했던 실천적 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서둘러 말한다면 본회퍼의 신학과 신앙에 대한 오해와 오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의 본회퍼 인용은 본회퍼 시대의 신앙과 실천의 핵심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왜곡을 넘어 전복이라 할 정도로 정반대의 인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이유를 말해보겠습니다. 첫째, 본회퍼의 저항은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에서 나온 인간사랑의 결실입니다. 그는 히틀러의 나치즘이 역사의 통치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의 통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나치즘은 전형적인 전체주의요, 전체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부재입니다. 

1920년대~1930년대의 독일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1차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승전국에 대한 전쟁보상 비용으로 국가의 살을 깎아내고 있었고, 지속적인 인플레와 실업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히틀러는 위대한 독일의 재건이라는 슬로건으로 독일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집권에 성공하게 됩니다. 철저한 독일국가지상주의 통치슬로건으로 개인의 자유는 물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유대인 같은 특정 민족이나 대상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독일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려 했습니다. 본회퍼는 이 전체주의적 나치즘이 혐오와 분노와 증오를 독일국민들 사이에 부추겨, 독일인을 포함해 전 세계를 고통에 몰아넣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치즘을 철저히 적그리스도적이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미친 운전사의 운전으로 더 많은 사람이 사고로 목숨을 잃지 않게 하려면 그를 운전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히틀러 암살운동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방법은 달랐지만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둘째, 본회퍼의 저항은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다 못해 신격화되기 시작한 히틀러 우상화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세력을 얻어가면서 점점 독일국민을 우민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우민화에 국가교회였던 독일루터교가 적극 지지하고 옹호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자신을 재림 그리스도처럼 우상화하는 정치권력자의 편을 든 것입니다. 물론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본회퍼의 저항은 이런 히틀러 우상화와 주님에 대한 교회의 배신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낸 것이었습니다.

셋째, 본회퍼의 저항신앙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 실천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독일국민은 말할 것 없고 교회 전체가 정치권력에 투항하여 길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이 거대한 흐름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간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고백교회 운동은 바로 이 흐름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신의 핵심은 그 어떤 정치, 이념, 이데올로기도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적 신앙에 위배될 때 교회는 이에 저항해야 하며, 이것이 교회의 주인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충성이라고 본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대다수의 당시 독일국민에게 미움받는 길을 택했고, 독일국가가 가는 길에 대해 저항한 것입니다. 독일에 대한 애국보다 ‘하나님 사랑’이 먼저였고, 이 하나님 사랑이 진정 독일을 사랑하는 길이라 확신한 것입니다.

2025년 현재 기독교 신앙을, 특정한 이념적 확신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헌신과 동일시하면서 본회퍼의 행동신앙을 모델로 언급하고 있는 일부 한국 기독교의 본회퍼 이해와 얼마나 대비됩니까? 맞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본회퍼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절대 충성하여, 심지어 국가와 국민전체가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잘못된 길을 갈 때, 그것에 대해 “아니오(Nein)!”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적 신앙의 근간은 우리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 충성입니다. 교회여!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라!  

* 2025년 2월 18일자 국민일보 칼럼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