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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복음주의를 말한다 (3) 축자영감을 넘어 진정한 무오성으로! ① 문자적 무오성 교육이 가져온 지성적 충돌
목회 초년병 시절에 청년부 사역을 할 때였습니다. 청년 하나가 대학 합격 후 상경하여 제가 섬기는 교회에 등록하고 청년부 모임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대학생활을 2년가량 하더니 심하게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상담을 하면서 원인을 알아보니, 자신이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학교에서 배웠던 신앙관과 대학에 와서 인문학, 자연과학 등 교양과목을 통해 배우는 지식이 심각하게 충돌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가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의 말은 이랬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교회학교에서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고 한 글자 한 글자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진리의 말씀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에 와서 새로 습득한 지식을 통해 보니, 성경 안에 오류(fallacy)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적 사실에 어긋나는 성경구절도 많고, 한 사건을 놓고 서로 묘사가 다른 구절들도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 설명이 다르면 둘 중 하나는 진실과 어긋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오류가 있고 과학적으로도 틀린 부분이 적지 않다면 어떻게 성경이 진리의 말씀일 수 있습니까?” 이 청년의 문제는 단순히 성경에 대한 회의에서 끝나지 않고 성경관이 흔들리자 신앙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축자영감설의 정의와 한국 교회의 배경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정말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이 한 글자 한 글자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 성경무오류설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가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 theory)이고 다른 하나가 유기적 영감설(organic inspiration theory)입니다. 축자영감설은 성서문자주의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이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직접 감동시키셔서 기록하였으므로 성경에는 과학적, 역사적, 사실적으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설입니다. 축자영감설 주장론자들은 마 5:18의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는 예수님 말씀을 그 전거(典據)로 듭니다. 이 설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보장해 주고 성도의 삶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적 확신을 가져다준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이 축자영감설을 믿어 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종교에는 경전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했고, 이 경전도 해석보다 문자 그대로 암송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교회 초기에나 새신자일 때는 축자영감설로 대변되는 성서문자주의 신앙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축자영감설을 부정하면 이는 곧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무오류의 본질: ‘신앙과 행위’를 위한 완전성
오해가 없도록 결론부터 말해 둡니다. 성경 66권은 분명 오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류가 없다는 말은 일점일획도 과학적, 역사적, 사실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써 성도의 ‘신앙과 행위’를 이끌어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 자녀로 살아 하나님께 영광드리게 하는 삶에 오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설을 믿게 되면 대단한 믿음 같지만 오히려 그 성도는 시간이 지나면 심각한 신앙의 폐해를 입게 됩니다. 첫째, 축자영감설은 사실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거짓 주장을 ‘억지화’하게 됩니다. 성경 안에는 과학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진술이 도처에 나옵니다. 굳이 ‘창조과학이 옳으냐, 그르냐’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창 1장에 보면 해와 달은 넷째 날에 창조되고(1:14~19), 식물은셋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1:11~13). 식물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 햇빛이 필요합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세우신 자연이치입니다. 그렇다면 식물보다 해가 나중에 창조되었다는 성경구절은 이 창조주의 이치인 과학적 순서에 어긋나게 됩니다. 또 창 1:16에 보면 “큰 광명(해)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달)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마치 달을 스스로 빛을 내는 광명체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대로 달은 광명체가 아니라 태양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또 있습니다. 레 11:20~23에 보면 “곤충이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곤충은 여섯 다리를 가졌습니다. 또 잠 6:6~7에 보면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관자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가 통제하거나 이끌어 주지 않지만 개미가 부지런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발견에 의하면 개미집단은 여왕개미, 일개미, 병정개미를 비롯해서 고도의 계급체계를 가진 조직사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마 13:32을 보면 예수님은 겨자씨를 보고 “이것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식물학에 의하면, 난초나 양귀비씨같이 겨자씨보다 작은 씨는 매우 많습니다. 굳이 창세기에 나오는 우주의 구조와 현대 천체물리학이 발견한 우주의 구조 차이를 말하지 않아도 성경 안에는 이미 과학적으로 방어될 수 없거나 의문이 제기되는 오류가 도처에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무오류설의 근거를 “성경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면 오히려 성경무오류론을 방어해 내기가 힘들다는 말입니다. 방어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게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fact) 묘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짐승의 숫자를 창 6장은 두 마리씩 암수 한 쌍으로 기술한 반면에 창 7장은 “정결한 짐승과 새는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둘씩”이라고 나옵니다. 또 구약에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을 놓고, 사무엘하 24:1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 다윗을 격동시키사”라고 서술하는 반면에 역대상 21:1은 같은 사건을 두고 “사탄이 일어나서 다윗을 격동하여”라고 나옵니다. 동일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해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구절을 팩트의 무오류로 주장하려고 하면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틀립니다.
사실 이는 한 사건을 놓고 두 성경이 해석을 달리했다는 말입니다. 성경 안에 이미 해석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설명이 다른 것입니다. 팩트의 오류는 또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한 여인이 자기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붓습니다(마 26:7). 그런데 같은 사건이 누가복음에는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는 것으로 묘사됩니다(눅 7:37-38). 어떻게 동일 사건을 놓고 두 가지 진술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실로 보면 둘 중 하나는 틀린 진술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사건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억지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