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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 신앙관에 대해 말한다(3) 에큐메니컬 복음주의 이야기 ⑦
3) 근본주의의 전투적 영성과 사회윤리
2022년 4월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일보」가 발표한 한국 교회 신뢰도는 18.1%였다. 2021년 21.3%에서 10%대로 하락한 수치다.1) 비개신교인 가운데는 8.8%만이 개신교회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한국 교회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개신교회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헌신적’, ‘희생적’, ‘도덕적’, ‘공감하는’, ‘진정성 있는’, ‘배려하는’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불교에 대해서는 ‘포용적’, ‘상생하는’, ‘보수적’, ‘친근한’, ‘엄숙한’, ‘배려하는’ 등의 이미지를 꼽았다. 반면 개신교는 ‘배타적’, ‘위선적’, ‘물질적’, ‘이기적’, ‘세속적’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응답자들이 개신교 하면 가장 먼저 ‘배타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점이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보인 타종교에 대한 공격성과 호전성,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일부 교회가 보인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태도, 백신 거부나 엄중한 방역 상황에서의 대규모 집회 감행 등 반사회적 행보가 개신교에 대한 배타적 인식을 크게 확대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 개신교의 일부 흐름이 가진 이러한 배타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한국 개신교가 본래부터 배타적인 종교로 인식된 것은 절대 아니었다. 한국 선교는 1885년 4월 5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의 내한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조선에서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한국 백성의 영혼을 깨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조선 사회가 요청한 개화와 애국 계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 전체의 변화에 이바지했다. 소위 통전적(holistic) 복음 선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기 선교사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복음 사역,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 계몽 사역, 병원을 중심으로 한 치유 사역과 구제와 봉사 사역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한편, 한국 YMCA와 YWCA 등 다양한 기독교 시민단체를 설립하여 사회 공동의 유익을 추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 결과 초기 한국 개신교는 이미 들어와 있던 천주교의 배타적·호전적 이미지와 달리 사랑으로 조선 사회의 요구에 응답하는 ‘백성 친화적’ 종교로 인식되었다.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16명이 개신교 인사였고, 전국의 개신교회가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복음이 뿌려진 시대와 역사의 아픔에 공감하며 사회의 공동선(common good)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한국 초기 개신교의 특성이 맺은 열매였다.
그런데 1930년대 제2차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한국 교회의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장기화한 일제 식민통치와 억압 속에서 교회는 염세적 전천년설적 세대주의를 받아들이게 됐고, 언더우드, 아펜젤러와 달리 세대주의적 근본주의 신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근본주의 신앙은 한국 교회 안에서 저변을 넓혀갔다. 이후 6·25전쟁의 비극을 겪으면서 한국 교회 안의 근본주의 신앙은 반공주의와 결합하여 결정적으로 지평을 확대했다.2) 이 과정에서 현대 미국 근본주의 신앙의 대부 격인 매킨타이어(Carl C. McIntire)는 한국 기독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 WCC, 빌리 그레이엄의 신복음주의와 끊임없이 신앙적 전투를 벌이며 미국 교회의 분열을 주도한 전투적 근본주의 신앙의 대표자였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친한파를 넘어 거의 집한파(䉅韓派)라 불릴 만큼 한국 교회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집착했다. 그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와 신복음주의에 맞서기 위해 세운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ICCC)를 통해 한국 교회 보수 교단의 지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훗날 ICCC의 과도한 분리주의와 정치 지향적 공격주의에 부담을 느껴 결별하게 되지만, 이미 그의 전투적·공격적 성향은 한국 교회 근본주의 신앙인들에게 깊이 각인된 후였다.
이들은 교회론과 종말론에서도 역사적 개혁주의와는 달리 세대주의의 ‘분리주의 종말론’과 ‘역사적 전천년설적 종말론’에 집착한다. 이를 통해교회와 사회를 분리해서 보며,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 들어가야 할 선교의 공간으로 보기보다 악과 마귀의 세력이 주도하는 전투의 대상으로 보는 세계관을 형성하여 한국 교회 안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정리하면 근본주의는 현대주의와의 싸움으로 시작되었기에 자연과학, 사회과학, 응용과학, 인문학 등 근대 이후 인간 지성이 만들어낸 모든 산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들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투적으로 대항하는 것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여기에 반공주의와의 싸움이 더해지면서 근본주의는 기독교 안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신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 흐름은 한국 교회가 초기선교와 달리 배타적 성향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 2026년 조사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공개한 ‘2026년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0%에 그쳤다. 반면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에 달했다. 2) 기독교 신앙이 신(神) 중심 세계관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나 성경적 가치관과 배치되는 동성애를 찬성할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신앙이 특정 이념에만 선택적 친화력을 갖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기독교 진리가 편파성을 지닌 것으로 오해하게 되어 진리의 보편성을 잃게 만든다. 결국 선교에 결정적 장애가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